1442년, 조선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은 가마 사건 하나로 역사 기록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저는 어릴 때 위인전에서 장영실을 처음 접했을 때, 그 결말이 너무 허무해서 한참 멍하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가마가 부서진 사건 하나로 그 천재가 사라졌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거든요.
역사적 실종: 장영실은 왜 사라졌는가
장영실은 노비 출신으로 종3품이라는 파격적인 벼슬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종3품(從三品)이란 조선의 관직 체계에서 상당히 높은 위계에 해당하며, 신분제 사회였던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전례를 찾기 어려운 파격 인사였습니다. 세종대왕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자격루(自擊漏)와 앙부일구(仰釜日晷) 같은 발명품을 만들어낸 인물이 하루아침에 역사에서 지워진다는 것, 뭔가 이상하지 않으십니까.
자격루(自擊漏)란 물의 흐름을 이용해 시간을 자동으로 알려주는 물시계를 뜻합니다. 앙부일구(仰釜日晷)는 솥을 뒤집어놓은 형태의 해시계로, 쉽게 말해 누구나 바깥에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공공장소에 설치했던 도구입니다. 어릴 때는 그냥 신기한 발명품으로만 봤지만, 지금 돌아보면 시간을 정확히 알지 못했던 시대에 이 두 발명품이 가져온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했습니다. 농사 시기를 조율하고, 관리들의 업무 시간을 통일하고, 백성들의 일상 전체에 질서를 부여한 혁신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인물이 사라진 배경에는 명나라의 압박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당시 명나라는 조선에 장영실을 죽이거나 명으로 보내라는 요구를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기술력이 조선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고 볼 수 있죠. 세종은 그를 지키기 위해 공식 기록에서 지우는 방식을 택했을 수도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제가 직접 사료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이 가설은 당시 조선-명 관계와 장영실의 행적을 연결해보면 꽤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조선왕조실록 기준으로 장영실의 마지막 기록은 1442년 세종 24년에 멈춥니다. 이후 그에 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없습니다. 역사 기록이 이렇게 깔끔하게 끊기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처형을 당했다면 기록이 남고, 유배를 갔다면 유배지 기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공백이 오히려 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다빈치 연결: 15세기 피렌체에서 무슨 일이
20세기 런던의 크리스티 경매장에 루벤스(Peter Paul Rubens)가 그린 한 그림이 올라옵니다. 그림의 제목은 <한복 입은 남자>. 루벤스는 17세기 플랑드르 화가인데, 왜 그가 15세기 조선인을 그렸을까요. 이 수수께끼를 풀다 보면 장영실의 행방과 연결되는 지점이 나타납니다.
이야기의 구조는 이렇습니다. 세종의 도움으로 탈출한 장영실이 정화(鄭和) 대장의 원정대에 합류해 유럽까지 이동합니다. 정화(鄭和)란 명나라 영락제 시절 대규모 해상 원정을 이끌었던 환관 출신 탐험가입니다. 그의 함대는 동남아, 인도, 아프리카까지 항해했던 기록이 있으며, 일부 연구자들은 그 항로가 유럽까지 닿았을 가능성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장영실은 교황청과 마찰을 빚습니다. 지동설(地動說)적 세계관, 즉 땅이 둥글고 우주의 구조가 기존 교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진 그를 교황 측이 이단으로 몰았다는 것입니다. 이단(異端)이란 당시 가톨릭 교리에 반하는 사상을 지닌 자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중세 유럽에서는 이단 판정이 곧 사형 선고와 같았습니다. 제 경험상 이 대목은 처음 들었을 때 오히려 역사적 개연성이 꽤 높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로 종교재판을 받은 것이 1633년이니까요.
교황청을 탈출한 장영실은 피렌체로 숨어듭니다. 그리고 거기서 7살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만납니다. 다빈치가 피렌체 인근 빈치 마을에서 태어난 것은 1452년이 맞고, 어린 시절 피렌체에서 성장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두 인물의 만남이 실제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다빈치가 평생 집착했던 비행 기계 스케치들을 생각하면 이 설정이 터무니없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비차 연구: 하늘을 날고 싶었던 두 천재의 접점
비차(飛車)란 조선 시대 기록에 등장하는 하늘을 나는 기계를 가리킵니다. 쉽게 말해 전근대 한국의 글라이더 혹은 초기 비행 장치 개념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정평구가 비차를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고, 일부 연구자들은 이 기술의 뿌리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봅니다. 장영실과 다빈치의 협업이라는 구도는 바로 이 지점을 건드립니다.
다빈치의 수많은 설계도 중에는 오르니톱터(Ornithopter)라고 불리는 새의 날개 구조를 모방한 비행 기계 스케치가 있습니다. 오르니톱터란 날개를 펄럭여 추진력을 얻는 방식의 비행체를 뜻하며, 현대 항공공학에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입니다. 장영실이 가져온 비차 개념과 다빈치의 기계적 사고가 만났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상상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장영실과 다빈치 두 인물의 연결 고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장영실은 조선에서 이미 천문 관측 기기와 자동화 시계 장치를 설계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물리적 원리를 이해하는 공학자였습니다.
- 다빈치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기계 구조에 강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 시기에 외부 자극을 받았다면 이후 설계도들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 비차와 오르니톱터는 모두 '새의 비행 원리를 기계로 구현하겠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에서 출발합니다. 두 아이디어가 독립적으로 같은 방향으로 발전했을 수도 있지만, 교류가 있었다면 상호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 루벤스의 그림 <한복 입은 남자>는 이 모든 이야기의 물리적 흔적일 수 있습니다. 루벤스가 피렌체 르네상스 시기의 기록이나 그림을 참고해 이 인물을 그렸다면, 장영실이 유럽에 실제로 존재했다는 간접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흥미로운 역사 가설 정도로 생각했는데, 각 요소들을 하나씩 들여다볼수록 연결 고리가 생각보다 촘촘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다빈치의 비행 기계 스케치가 실제로 남아있고, 비차 관련 조선 기록도 실재하며, 루벤스의 그림도 실제 경매에 올랐습니다. 픽션과 사실의 경계를 밟아가는 이 구성이 오히려 역사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어릴 때 위인전 속 장영실은 그냥 '발명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그가 역사에서 사라진 공백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 속 인물을 다시 보고 싶다면, 그리고 장영실이 왜 사라졌는지 한 번쯤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 이야기를 따라가 보시길 권합니다. 단순한 역사 지식이 아니라, 그 시대 과학자가 세상과 어떻게 충돌했는지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될 겁니다.
참고: https://www.lottecinema.co.kr/NLCHS/Movie/MovieDetailView?movie=241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