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정도 깜빡하는 건 나이 들면 다 그런 거 아니야?"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같은 말을 반복하거나 방금 들은 이야기를 잊어버려도 단순한 건망증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치매에 대해 알아보면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치매 환자 중 알츠하이머병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혈관성 치매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사실을 처음 접했을 때 꽤 놀랐습니다. 흔히 치매라 하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만 떠올리는데, 혈관성 치매는 원인도, 진행 방식도, 그리고 무엇보다 예방 가능성도 전혀 다른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혈관성 치매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 등 혈관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평소 생활습관 관리가 위험을 낮추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많은 분들이 잘 모르고 지나치는 혈관성 치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합니다.

혈관성 치매의 원인과 위험인자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 질환으로 인해 뇌 조직이 손상되면서 발생합니다. 여기서 뇌혈관 질환이란 뇌로 향하는 혈관이 막히는 허혈성 뇌혈관 질환(뇌경색)과 혈관이 터지는 출혈성 뇌혈관 질환(뇌출혈)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쉽게 말해 뇌에 혈액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뇌 세포가 죽어가는 상황이 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이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 한 번의 뇌혈관 사고로도 치매가 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시상, 해마, 전두엽 같은 전략적 뇌 부위에 단일 뇌경색이 발생하면 광범위한 손상 없이도 치매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반드시 뇌혈관 질환이 반복되어야만 혈관성 치매가 생기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혈관성 치매의 대표적인 위험인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고혈압: 혈관 벽에 지속적인 압력을 가해 혈관을 손상시키고 뇌경색·뇌출혈 위험을 높입니다.
- 당뇨병: 혈당 이상이 지속되면 미세혈관이 좁아지고 뇌 소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심방세동: 불규칙한 심장 박동으로 혈전이 생기고 이것이 뇌혈관을 막는 원인이 됩니다. 여기서 심방세동이란 심장의 윗방(심방)이 무질서하게 떨리는 부정맥의 일종으로, 뇌졸중 위험을 약 5배 높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고콜레스테롤혈증, 흡연, 과도한 음주
| 위험인자 | 설명 |
|---|---|
| 고혈압 | 혈관 벽에 지속적으로 압력이 가해지면서 혈관이 손상됩니다. 이로 인해 뇌경색이나 뇌출혈 위험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
| 당뇨병 | 높은 혈당 상태가 지속되면 미세혈관이 손상되고 좁아져 뇌 소혈관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
| 심방세동 | 심장의 윗방(심방)이 불규칙하게 떨리는 부정맥의 일종입니다. 혈전이 생기기 쉬워지고, 혈전이 뇌혈관을 막아 뇌졸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
| 고콜레스테롤혈증 | 혈관 내 콜레스테롤이 쌓여 혈관이 좁아지고 혈액순환을 방해해 뇌혈관 질환 위험을 높입니다. |
| 흡연 | 혈관을 수축시키고 혈관 내벽을 손상시켜 동맥경화를 촉진합니다. |
| 과도한 음주 | 혈압 상승과 혈관 손상을 유발하여 뇌혈관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
이 위험인자들이 모두 생활습관과 만성질환 관리로 조절 가능하다는 점, 저는 이게 혈관성 치매가 알츠하이머병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 관리가 필요한 항목 |
|---|
| 고혈압 |
| 당뇨병 |
| 심방세동 |
| 고콜레스테롤혈증 |
| 흡연 |
| 과도한 음주 |
알츠하이머와의 증상 비교
알츠하이머병은 베타 아밀로이드나 타우 단백질 같은 이상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면서 신경세포가 서서히 파괴되는 퇴행성 뇌 질환입니다. 초기에는 최근 기억 감퇴가 두드러지고, 이후 천천히 다른 인지기능 저하가 따라옵니다. 진행 경과가 비교적 일정하고 예측 가능한 편입니다.
반면 혈관성 치매는 경과가 훨씬 불규칙합니다. '중풍을 앓고 난 후 갑자기 인지기능이 확 떨어졌다'는 경우가 혈관성 치매의 전형적인 패턴입니다. 뇌혈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계단식으로 악화되는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이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치매는 무조건 서서히 온다고만 생각했거든요.
증상의 종류도 다릅니다. 혈관성 치매는 비교적 초기 단계부터 편측운동마비(몸 한쪽이 마비되는 증상), 구음 장애(발음이 어눌해지는 증상), 연하곤란(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증상), 보행 장애 등 신경학적 이상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츠하이머병에서 이런 신체 증상이 두드러지는 건 말기에 이르러서이지만, 혈관성 치매에서는 훨씬 일찍 나타납니다.
또한 인지기능 저하 양상도 다릅니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 저하가 먼저 눈에 띄지만, 혈관성 치매는 판단력, 언어 기능, 계산력 같은 다른 인지 영역이 기억력보다 더 빨리 나빠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제로 치매는 환자 본인보다 가족이 먼저 변화를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도 '성격이 변했다', '판단이 이상해졌다'는 말이 먼저 나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치매 수준의 인지 저하가 오기 전, 경미한 인지기능 장애 단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혈관성 인지장애(Vascular Cognitive Impairment)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여기서 혈관성 인지장애란 치매 진단 기준에는 아직 미치지 않지만 혈관 문제로 인한 인지 저하가 시작된 상태를 가리키며, 이 단계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습니다(출처: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정보).

예방 관리를 위해 지금 할 수 있는 것
혈관성 치매가 다른 치매 원인에 비해 예방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전문가들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핵심은 뇌혈관 질환의 위험인자를 미리 조절하는 것입니다. 대한치매학회도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관리와 금연, 절주가 혈관성 치매 예방의 기본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처: 대한치매학회).
제가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마음에 걸렸던 건 따로 있습니다. 자꾸 깜빡거리거나 방금 전 일이 기억나지 않는 증상을 '그냥 피곤해서'라고 넘기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단순 건망증과 치매는 다릅니다. 단순 건망증은 힌트를 주면 기억이 돌아오지만, 치매성 기억 저하는 힌트를 줘도 기억 자체가 없습니다. 이 차이 하나만 알아도 조금 더 주의 깊게 자신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혈관 건강을 지키기 위해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관리 포인트는 다음과 같습니다.
- 혈압을 꾸준히 측정하고 고혈압이 있다면 약물 치료와 식단 조절을 병행합니다.
- 당뇨병 진단을 받은 분이라면 혈당 관리가 뇌혈관 보호와 직결됩니다.
- 주 150분 이상의 유산소 운동은 혈관 탄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흡연 중이라면 지금 당장 끊는 것이 가장 빠른 뇌혈관 보호 수단입니다.
- 가족 중 뇌졸중이나 치매 이력이 있다면 더 일찍, 더 자주 검진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행동이나 말에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느껴진다면, 그냥 넘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 경험상 이런 변화는 오래 지켜보다 보면 오히려 둔감해지기 쉽습니다. 빠르게 알아차리고 함께 대화해보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방금 전 일을 기억 못 하거나, 성격이 달라졌거나, 걸음걸이가 이상해졌다면 단순히 나이 탓으로 돌리기 전에 한 번쯤 전문의 상담을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혈관성 치매는 예방할 수 있는 치매입니다. 지금 당장 내 혈관 건강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 그게 치매를 막는 가장 현실적인 첫걸음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문제는 반드시 전문의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참고: https://www.snuh.org/health/nMedInfo/nView.do?category=DIS&medid=AA000135
https://www.dementia.or.kr